잡다한 지식 / / 2025. 3. 12. 11:50

제논의 역설이란 무엇인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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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논의 역설 개념과 주요 역설들
    •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 이분법 역설
    • 화살 역설
    • 곡마단 주자(경주자) 역설 등
  2. 고대 철학자들의 해석
    • 플라톤이 제논의 역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분석과 비판
    • 에우독소스와 고대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했는지
  3. 중세 및 근대 철학자들의 접근
    • 라이프니츠의 무한소 개념
    • 칸트의 공간과 시간 개념을 바탕으로 한 해석
    •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 제논의 역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1. 제논의 역설 개념과 주요 사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엘레아의 제논은 운동과 다수(多數)의 개념에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는 일련의 역설을 제기했습니다 . 그는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실제로 있으며 변화나 운동은 환상이다”라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여럿이 존재하거나 운동이 실제라고 가정하면 모순에 빠진다는 논증들을 전개했는데 , 그 중 대표적인 네 가지가 다음과 같습니다.

  • 아킬레우스와 거북이 역설: 가장 빠른 발을 가진 영웅 아킬레우스도 느린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역설입니다.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보다 늦게 출발해 추격하면, 거북이가 출발한 지점을 아킬레우스가 겨우 도달하는 순간 거북이는 그만큼 또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추격자는 선두주자가 있었던 지점을 하나씩 따라잡아도 그 사이 선두는 계속 조금씩 앞으로 가기 때문에, 추격자는 영원히 선두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즉 “더 빠른 자(아킬레우스)가 더 느린 자(거북이)를 앞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 이분법(반으로 나누기) 역설: 어떤 목표 지점에 도달하려면 그 절반 지점을 먼저 가야 하고, 또 그 절반의 절반 지점을 가야 하기를 무한히 반복해야 합니다. 어떤 물체가 거리 B까지 움직이려면 우선 중간점까지 가야 하고, 다시 그 중간점까지… 등 무한히 많은 경로를 거쳐야 하므로, 유한한 시간에 결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역설입니다. 이 역설은 “움직이는 물체는 유한 시간 내에 결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주장하여, 운동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 화살 역설: 한 순간(moment)이라는 것은 길이(시간의 폭)가 없는 “찰나”인데,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을 이러한 순간순간으로 관찰하면 매 순간 화살은 특정 위치에 정지해 있을 뿐이라고 논증했습니다. 어느 한 순간에 화살은 자신과 동일한 크기의 공간을 점유하고 정지해 있고, 시간은 그 순간 동안 흐르지 않으므로 화살은 그 순간에 이동하지 않는다—이런 순간들이 모든 시간점을 채운다면 화살은 날아가는 내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결론입니다. 요컨대 제논은 “움직이는 화살도 매 순간 보면 정지해 있으므로 실제로는 정지와 다름없다”는 모순적 주장으로 시간의 연속성운동의 개념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 곡마단 주자(경주장의) 역설: 동일한 속도로 달리는 두 무리의 물체가 있다고 가정할 때, 배열 방식에 따라 같은 시간에 한 쪽은 다른 쪽의 두 배 거리를 이동한다는 모순을 보입니다. 예컨대 경주 트랙의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한 무리의 런너들은 중간 지점부터 출발하고 다른 무리는 끝 지점부터 반대 방향으로 뛰어 서로 스쳐 지나간다면, 절반 시간 동안 한 쪽 무리는 상대편의 두 배에 해당하는 표지들을 지나치게 되어 “반(半)시간 = 두 배의 시간”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경주장의 역설”은 공간과 시간의 불연속적(원자적) 구성 가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제논은 연속적이어도 불연속적이어도 모순이 생기도록 의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2. 고대 철학자들의 해석:

  • 플라톤의 해석: 플라톤은 대화편 「파르메니데스」에서 젊은 소크라테스와 파르메니데스, 제논의 대화를 통해 이 역설들을 언급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제논의 의도는 감각에 따른 다원성과 운동의 실재를 가정하면 논리적 모순이 드러남을 상세히 보임으로써, 오직 불변의 하나의 존재만을 인정한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옹호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플라톤은 제논의 “여럿이 존재한다면 한 대상이 같으면서 다를 수 있다”는 논증에 대해, 어떤 대상도 동일한 관점에서 동시에 같고 다를 수는 없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같을 수도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함으로써 그 모순을 해소합니다 이를 통해 플라톤은 제논이 제기한 “하나이면서 많다”는 역설 (다원성의 역설)이 동일성에 대한 혼동에서 비롯된 궤변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다만 플라톤은 운동의 역설들(아킬레우스, 화살 등)에 대해서는 상세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고, 주로 제논 역설의 철학적 의의변증법적 활용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과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역설들을 물리학과 논리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했습니다. 그는 저서 「물리학」에서 “유한한 시간에 무한히 많은 분할을 통과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며, 제논이 간과한 점을 짚었습니다. 우선 아킬레우스와 이분법 역설에 대해, 거리뿐 아니라 시간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지적했습니다. “거리를 반으로 줄이면 그 거리를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반으로 준다”는 것으로,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추격할 때 점점 짧아지는 거리들을 뛰는 데 드는 시간도 계속 짧아지므로무한 과정을 총합해도 유한한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움직이는 물체가 유한 시간에 무한히 많은 구간을 지날 수 없다”는 제논의 전제를 반박하며, 무한에도 두 종류가 있다고 구별했습니다. 즉 “실제로 완성된 무한”(actual infinite, 완전히 무한한 양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지만, “잠재적인 무한”(potential infinite)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달리 말해 공간이나 시간의 구간을 필요에 따라 끝없이 나눌 수는 있으나, 그것이 실제로 무한한 조각으로 쪼개져 완성된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잠재적 무한” 개념을 통해, 아킬레우스는 무한히 많은 가능적 분할을 거쳐도 총합이 유한하므로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이 잘못으로 완전한(실제적인) 무한 개념을 가정하여 역설을 만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연속적인 것은 무한히 나눌 수 있지만 그 분할이 모두 실재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통찰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한편 ‘경주장의 역설’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이 시간의 최소 단위를 가정함으로써 잘못을 범했다고 보았습니다. 애초에 동일한 시간 내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상대적 거리를 논하는 것은 시간의 연속성을 간과한 것이며, 시간이나 공간을 원자적 단위로 상정하면 그런 모순이 생길 수 있지만 실제로 시간은 임의적으로 쪼갤 수 있을 뿐 최소 단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여겼습니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는 제논의 역설들을 ‘겉보기 난제’로 치부하며, 자신의 연속 개념과 잠재적 무한 개념 하에서는 이러한 모순이 충분히 해소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해석은 이후 역설을 이해하는 표준적 틀을 제공했고, 오랫동안 권위를 갖고 받아들여졌습니다.

 

  • 화살 역설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운동의 연속성을 강조했습니다. 제논은 시간이 불연속적인 “순간들의 집합”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은 분할 불가능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어떤 크기나 거리도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점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즉 한 개별 ‘순간’에는 운동이 일어나지 않지만, 운동은 순간과 순간 사이의 관계로 정의되는 것이므로 (어떤 기간 동안 위치 변화로서 정의됨), “순간에 운동이 없다”는 이유로 운동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견해에서 시간과 운동은 본질적으로 연속적인 과정이며, 한 점이나 한 순간은 연속선상의 추상에 불과하므로, 순간마다 화살이 정지해있어도 다음 순간 다른 위치에 있다면 그 두 순간을 잇는 간격 속에서 운동이 성립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세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해법을 계승하여 “시간은 순간들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어느 한 순간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시간 전체에 운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석함으로써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시간은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제논의 화살 논증을 반박했습니다.

 

  • 에우독소스와 고대 수학자들의 접근: 제논의 역설이 던진 “무한 divisibility(무한 분할)”의 문제는 고대 수학자들에게도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이기도 했던 수학자 에우독소스(기원전 4세기)는 제논의 역설에 직접 언급을 남기진 않았지만, 무한에 대한 rigor한 수학적 대응을 발전시켜 역설의 논리를 우회적으로 무력화했습니다. 그는 「비례론」(후에 유클리드 『원론』 V권에 수록)을 통해 “임의의 두 ‘연속량(길이, 면적 등)’의 크기 비교는 유리수비(比)를 통해서만 판단한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연속적인 양을 유리수들의 극한값(limit)으로 정의함으로써 유리수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무리수 길이도 논리적으로 다룰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 에우독소스의 비례론 덕분에 고대 수학은 무한히 많은 부분으로 이루어진 연속량을 엄밀히 정의할 수 있었고, “완전히 실현된 무한집합”을 다루지 않고도 연속적인 크기를 계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에우독소스는 “소진법”이라는 혁신적 기법을 고안했는데, 이는 어떤 도형의 면적이나 부피를 무한히 잘게 나눈 다각형/다면체의 합으로 근사하여 계산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원의 면적을 다각형들로, 곡선 구간을 다각형의 집합으로 한없이 세분화하면, 무한히 많은 조각의 합으로 곡선 도형의 넓이를 구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입니다. 실제로 고대의 위대한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이 소진법을 발전시켜, 포물선에 의해 구획된 면적 등 무한급수로 표현되는 넓이를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그는 포물선 아래의 넓이를 삼각형들로 분할해 $1/4 + 1/16 + 1/64 + \cdots$ 형태의 무한 등비급수로 합산하여 유한한 넓이 값을 얻어내었고, 피라미드나 원뿔의 부피도 무한히 많은 얇은 단면의 합으로 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고대 수학자들의 성과는 “작아지는 무한”을 다루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제논이 제기한 “무한한 과정은 완수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실질적 해답을 준 셈이었습니다. 요컨대 에우독소스-아르키메데스로 대표되는 고대 수학의 발전은 제논의 역설을 수학적으로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했고, 아킬레우스 역설의 무한 급수나 이분법 역설의 무한 분할도 적절한 방법으로 합하면 유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3. 중세 및 근대 철학자들의 접근법:

  • 라이프니츠의 무한소 개념과 해석: 근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는 제논의 역설을 본격적으로 해결하는 열쇠 중 하나로 “무한소(無限小)”, 즉 무한히 작은 량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미적분학을 공동 창시하면서 유한하게는 0이 아니지만 어떤 유한한 수보다도 작다고 할 수 있는 양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 연속적인 변화를 미분 계산으로 분석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프니츠는 “자연은 도약하지 않는다 (Natura non facit saltus)”라는 격언으로 알려진 연속성의 법칙을 옹호하여, 자연현상에서 연속적인 변화가 기본임을 주장했고, 공간과 시간도 무한히 분할 가능한 연속체로 보았습니다. 다만 라이프니츠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연속체를 실제 무한한 점들의 집합으로 여기지 않았고, 대신에 연속체는 분할할 수 있지만 무한한 개별 점의 모임은 아니라는 관점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연속체의 미로”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이 문제에 깊이 천착했고, 궁극적으로 공간과 시간 같은 연속체는 이상적(관념적)인 것이고 실제 세계의 궁극적 실재는 무한히 작은 단위들(모나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모나드론(monadologie)에 따르면, 물질을 무한히 쪼개어 들어가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실체(monad)에 이르는데, 이들은 부분이 없는 점같은 실체이지만 물리적 크기를 지닌 점은 아니므로 수학적 점이나 순간과는 다릅니다. 이렇게 라이프니츠는 현상적으로는 연속이어도 본질적으로는 불연속적 실체로 구성된 세계관을 제시함으로써, 제논의 역설에서 드러난 연속과 분할의 모순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즉, 공간과 시간의 무한분할은 우리의 관념 속에서 가능할 뿐 실제 사물은 점들의 집합으로 구성되지 않는다고 봄으로써, 제논의 역설을 근원적으로는 인식의 문제로 환원시킨 것입니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미적분의 “무한소 계산”을 통해 아킬레우스나 이분법 역설에서 등장하는 수열의 합이 수렴함을 보이고, 화살 역설도 한 순간에서의 순간속도 개념으로 풀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의 미적분학 항목에서 설명됩니다). 결국 라이프니츠는 철학적으로는 연속체 개념을 재해석하고 수학적으로는 무한소를 다루는 계산법을 개발함으로써, 제논의 문제에 복합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 칸트의 해석 (공간과 시간 개념): 독일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제논의 역설이 제기하는 무한에 대한 이성의 모순을 자신의 철학 체계 속에서 중요한 사례로 다루었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앙티노미(antinomies)»에서 이성이 우주나 물질의 궁극적 성질에 대해 서로 반대되는 명제들을 뒷받침할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그 중 제1및 제2의 안티노미가 바로 제논의 문제의식과 연관됩니다. 예컨대 제2 안티노미는 “모든 물질은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명제(테제)와 “어떠한 것도 단순한 부분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물질은 무한히 분할 가능하다”는 반대 명제(안티테제)가 동등한 이성적 근거를 가지고 주장될 수 있음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유한 대 무한, 분할 불가능한 원자 대 무한분할 가능한 연속체라는 상반된 주장들이 모두 그럴듯한 논리로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경험 범위를 넘어선 대상(절대적 전체로서의 세계나 무한)에 적용될 때 모순에 빠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칸트의 진단입니다. 칸트는 이러한 이성의 “스스로 만드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 개념을 혁신적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뉴턴처럼 공간과 시간이 실제로 독립 존재하는 실체라고 보지도, 또는 라이프니츠처럼 실체들의 관계라고 보지도 않고, 우리 인간의 인식구조가 부여하는 순수한 형식(直觀의 形式)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쉽게 말해 공간과 시간은 물자체의 속성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을 구성하기 위해 마음에 갖추고 있는 무한하고 연속적인 좌표틀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험적 이상주의”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생기는 모순은 궁극 실재의 모순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방식에 기인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칸트는 제논의 역설에 직접 해답을 내진 않았지만, 제논적 문제인 “무한히 분할된 연속체”에 관한 논쟁에서 양쪽 주장(유한/무한 모두)이 다 옳을 수도 있고 다 틀릴 수도 있음을 보였습니다. 예컨대 그는 “경험적으로 주어진 어떤 물체를 우리가 한없이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점들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하여 물질의 무한분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원자 존재를 배제하지 않았고, 결국 경험 밖의 질문은 무의미하다고 보았습니다. 요컨대 칸트는 공간과 시간 자체를 우리의 직관 형식으로 간주하여 제논의 역설을 발생시키는 전제를 해소했고, 제논이 제기한 모순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설 때 생기는 가상적 문제일 뿐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로 칸트는 “이성의 한계 설정”을 시도했고, 제논 이후 지속된 연속/불연속, 유한/무한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습니다.

 

  •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으로 본 해결: 17세기 말 아이작 뉴턴라이프니츠가 독립적으로 발명한 미적분학은 제논의 역설들을 수리적으로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했습니다. 미적분학의 핵심은 연속적인 변화량을 무한히 작은 변화로 쪼개어 분석하고, 이를 다시 적분을 통해 합산하면 원래의 유한한 변화량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한히 많은 과정은 끝마칠 수 없다”는 제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 역설에서 제시된 거리의 무한 급수(100m + 10m + 1m + …)는 미적분학으로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는 무한급수이며 그 합이 유한함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즉, 무한히 많은 단계도 각 단계의 크기가 줄어들면 유한 시간 내에 모두 수행될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또 순간적인 변화량의 계산(미분)을 정식화하여 운동하는 물체의 “순간 속도”를 정의했습니다. 이는 화살 역설에 대한 해법을 제공하는데, 화살이 어느 한 “순간”에는 정지해 있지만 그 순간에의 속도값을 정의함으로써 운동과 정지의 모순 없이도 화살의 운동 상태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미적분학에서는 운동을 ‘순간들의 합’이 아니라 연속적인 함수로 나타내고, 순간의 속도는 시간 간격을 0으로 줄였을 때의 위치 변화율(미분계수)로 정의합니다. 그 결과 제논이 “순간에는 이동이 없다”고 지적한 부분은 맞지만, 그 순간의 속도는 0이 아닐 수 있음이 명확해졌습니다. 요컨대 뉴턴-라이프니츠 이래의 미적분학적 해석은 제논의 역설이 제기한 수학적 문제들(무한급수, 순간 운동)을 논리적·계산적으로 해소했습니다. 다만 미적분학이 등장한 후에도 철학자들은 “수학적 해법이 곧 철학적 문제의 해소인가”에 대해 논쟁을 이어갔습니다. 예컨대 앙리 베르그송은 제논의 문제를 수학이 아닌 철학적으로 재조명하여 “운동 그 자체는 분할될 수 없고 오직 운동의 궤적만이 분할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운동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지 공간적 점들의 배열로 파악하면 안 된다는 논지) 또 다른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근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제논의 역설들은 무한 개념의 수용연속량에 대한 정밀한 수학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되었으며, 더 이상 논리적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연속성과 무한에 대한 이해를 촉진한 계기로 평가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제논의 역설을 배우면서, 한편으로는 무한 개념에 대한 철학적 사유의 중요성을 깨닫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적분학의 기본 원리(무한급수의 수렴, 순간변화율의 개념)가 어떻게 이런 역설적 상황을 해결하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각 시대의 철학자들과 수학자들이 제논의 도전에 응답해온 과정 자체가 철학과 과학의 발전사를 이루는 흥미로운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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